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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5대 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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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시인

박용래 (朴龍來)

(1925~1980)

등록일: 2012-10-05
대전문화재단 예술지원팀
조회: 2661

작가소개

아아, 앞에도 없었고 뒤에도 오지 않을 하나뿐인 정한의 시인이여. 당신과 더불어 산천을 떠난 그 눈물들, 오늘은 어느 구름에 서리어 서로 만나자 하는가. ……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언제나 그의 눈물을 불렀다. 갸륵한 것, 어여쁜 것, 소박한 것, 조촐한 것, 조용한 것, 알뜰한 것, 인간의 손을 안 탄 것, 문명의 때가 아닌 묻은 것, 임자가 없는 것, 아무렇게나 버려진 것, 갓 태어난 것, 저절로 묵은 것. 그는 누리의 온갖 생령에서 천체의 흔적에 이르도록 사랑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사랑스러운 것들을 만날 적마다 눈시울을 붉히지 않은 때가 없었다.

-이문구, 박용래 약전(略傳)-

  

그는 여성적이고 감상적이었다. 그의 몸짓, 말투부터가 너무나 시인다웠고, 시에 관한 한 촌보도 양보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자존심이 있었다, 나는 그의 영롱한 감성과 서정의 아름다움에 늘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술을 좋아해서 만나면 으레 술잔을 나누었던 그는 한 줄의 시를 위해 몇십 번씩 생각하며 시어를 다듬을 만큼 꼼꼼하고 생각이 깊었다.

-호현찬 언론인·영화인, 수채화처럼 맑고 아름다운 인생-

 

 

돈 세는 일이 역겨워 은행을 그만두시고, 등록금을 독촉하기가 안스러워 결국 교직을 떠나셨다고 말씀하시던 아버지. 어느 곳에나 얽매이기를 싫어하셨던 자유분방함과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하고 여린 심정으로, 어쩌면 아버지는 태어날 때부터 시인으로 운명지워져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박연 서양화가, 박용래시인의 딸, 아버지는 오십 먹은 소년-

 

 

 

술 먹은 박용래가

대전 유성온천 냇둑

술먹은 고은에게 물었다

은이 자네는

저 냇물이 다 술이기 바라지? 공연스레 호방하지?

나는 안 그려

나는 저 냇물이 그냥 냇물이기를 바라고

술이 그냥 술이기를 바라네

 

고은이 킬킬 웃어대며

냇물에 돌 한 개를 던졌다

물은 말 없고

그 대신 냇둑의 새가

화를 내며 날아갔다

박용래가 울었다 안주 없이 먹은 술을 토했다

괜히 새를 쫓았다고 화를 냈다

 

은이는 나뻐

은이는 나뻐

 

박용래가 울었다 고은은 앞서가며 울지 않았다.

-고은, 어느날 박용래-

 

 

박용래

 

소나기 속에 매미가 우네.

 

황산나루에서 빠져 죽고 싶은 사람

막걸리잔 들고 웃다 우는 사람

상치꽃 쑥갓꽃 하며 호호거리는 사람

맷돌 가는 소리에 또 우는 사람

 

싸락눈 속에 매미가 우네.

 

-홍희표, 박용래- 

 

 

박용래

박용래는 훗승에서 개구리가 되었을라

상칫단 씻다 말고 그리고…… 그리고……

아욱단 씻다 말고 그리고…… 그리고……

죽은 홍래 누이 그립다가 그리고…… 그리고……

박용래는 훗승에서 그리고로 울었을라

 

서정춘 시집 (시와시학사)에 실린 박용래

 

       

술은 마음의 울타리

술 속에 작은 길이 있어

그 길을 따라 가 보면

조약돌이 드러난 개울

개울 건너 골담초 수풀

골담초 수풀 속에 푸슥푸슥

날으는 동박새

스치는 까까머리 아기 스님 먹물 옷깃

누가 마음의 울타리를 흔드는가

누가 마음의 설렁줄을 당기는가.

 

江景

 

안개비 뿌옇게 흐려진 창가에 붙어서서

종일 두고 손가락 끝으로 쓰는 이름

진한 잉크빛 번진 서양 제비꽃, 팬지

입술이 갈라진, 가슴이 너울대는.

 

오류동

방안에 들였어도 퍼렇게 얼어죽은 삼동의 협죽도

쇠죽가마 왕겨불로 달군 방바닥은 등을 지져도

외풍이 세어서 휘는 촛불꼬리

들리지도 않는 부뚜막의 겨울 귀뚜라미 소리

찔찔찔찔 들린다 해서 잠들지 못하는

초로의 시인

윗목에 얼어죽은 제주도 협죽도가

함께 불면증을 앓고 있었다

대전시 교외 오류동

삼동의 삼경. 귀를 세우고

 

 

-나태주, <박용래>-

 

 

맑은 이슬방울이 연잎에서 또르르 굴러 떨어졌는데, 그것은 늙지 않을 것 같다. 박용래는 내 안에서 늙지 않은 채로 항상 이슬처럼 있다. 박용래는 그 타고난 자리를 잃지 않고 그 천분의 자리를 지켜낸 사람 같다.

박용래를 생각하면 내가 지금 꿈의 세계에 있는 듯도 싶다. 박용래라는 사람은 타고 날 때 묻어 있었던, 타고나기 이전의 어떤 것을 아직 지닌 채 살았던 사람같다. 세상 파도가 아무리 거셌어도 박용래에게서 그것을 앗아가지 못했다. 그것이 시가 되고 그는 이 세상에서 오직 시인으로만 살다가 갔다.

-최종태 조각가, 맑은 이슬방울처럼 그렇게 : 박용래를 회상함- 

 

 

‘아내와 아이들 다 職場에 나가는
밝은 낮은 홀로 남아 詩 쓰며 빈집 지키고
해어스름 겨우 풀려 친구 만나러 나온다는
朴龍來더러 ‘장 속의 새로다’하니,
그렇기사 하기는 하지만서두 지혜는 있는 새라고 한다.
요렇처럼 어렵사리 만나러도 나왔으니,

 

지혜는 있는 새지 뭣이냐 한다.
왜 아니리요.
그중 지혜있는 장 속의 詩의 새는
아무래도 우리 朴龍來인가 하노라.’        

 

                                                      -서정주 ‘박용래’ 전문
문학사상 1976년 1월호에 게재

 

 

 아버지를 회상하며

 
가을. 감나무 이파리. 감새의 수리성.

오래 전 일입니다. 방에서 큰 울음소리가 들리고 얼마간의 정적이 흘렀습니다.

조심히 문을 열고 쳐다본 아버지의 모습.

아…….

전 시인을, 우수수 떨어진 청시사의 저녁놀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구름의 행방을 묻지 말자. 구름은 영원한 방랑자.’

두 줄의 시구를 읊고, 육 개월 후 구름이 되어 가셨습니다.                


                                                                        - 박노아

작가연보

1925

음력 114일 충남 논산군 강경읍 본정리 출생

1939

강경 중앙보통학교 졸업

1940

읍내 황산교 너머로 출가했던 홍래(鴻來)누이가 초산의 산고로 사망

 

이 충격으로 삶에 회의를 품기 시작하여 내성적인 우울한 성격으로 변함

1943

강경 상업학교 전교 수석 졸업, 3학년 때는 대대장

 

조선은행 서울 본점 근무에 따라 상경

1944

블라디보스톡행 조선은행권 현금 수송열차의 입회인으로 자청하여 두만강을 도하

 

조선은행 대전지점으로 전근

1946

해방후 일본에서 귀국

 

정훈, 박희선, 하유상 등과 함께 동백 시인회조직, 동백창간

 

호서중학교에서 국어와 상업 강의

1948

보문중학교 교사로 전근

1950

국민학교 교사 채용시험 합격, 6·25 동란 중에 부모와 사별함

1955

국어과 준교사 자격을 취득, 대전철도학교 교사로 취임.

 

중매로 간호원인 이태준(李台俊)과 결혼.

 

현대문학가을의 노래로 박두진(朴斗鎭) 선생의 추천을 받고

 

이듬해 황토길,으로 3회 추천 완료

1957

장녀 노아(魯雅) 출생

1959

차녀 연() 출생

1960

한밭중학교 교사로 취임

1961

당진군 송악중학교 교사로 전근, 삼녀 수명(水明)출생

 

5회 충청남도 문화상 수상

1965

송악중학교를 사임, 대전시 중구 오류동 17-15번지에 정착

1966

사녀 진아(眞雅)출생

1969

첫 시집 싸락눈(삼애사)이 한국시인협회 주관 오늘의 한국시인선집으로 출간

 

저녁눈으로현대시학(現代詩學)사 제정 제1회 작품상 수상

1971

한성기,임강빈,최원규,조남익,홍희표 등 대전 시인들과 6인 시집 청와집(靑蛙集)출간

 

장남 노성(魯城) 출생

1974

한국문인협회 충남지부장에 피선

1975

2시집이자 시선집인 강아지풀(민음사) ‘오늘의 시인총서로 출간

1978

문학사상에 에세이 호박잎에 모이는 빗소리를 연재

1979

현대시인선으로 제3시집 백발(白髮)의 꽃대궁(문학예술사)을 출간

1980

7월 교통사고로 입원치료. 1121일 심장마비로 작고

 

충남문인협회장으로 영결, 대덕군 산내면 삼괴리 천주교 묘지 안장

 

사후, 12월 시 <먼 바다>와 시집 백발의 꽃대궁으로

 

한국문학제정 제7회 한국문학작가상을 수상

1984

10월 박용래 시선집 먼 바다(창작과 비평사) 출간

 

1027일 대전 보문산 사정공원에 박용래시비가 세워짐

 

대전일보 박용래 문학상 제정

1985

11월 박용래 산문집 우리 물빛 사랑이 풀꽃으로 피어나면출간

작품세계

박용래는 대전 지역의 대표적인 향토시인으로서 눈물의 시인이라 불릴 만큼 자연주의적 서정 세계를 개척하여 1950년대 전, 후 허무주의와 감각주의를 극복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한국적 서정시의 원점에서 조금도 비껴서지 않고 일관되게 자신의 시세계를 진전시켜 나갔다. 그는 반문명, 반사회, 반현실적인 것들을 시적 기반으로 삼고 자연과 생명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형상화하는데 주력했다. 박용래의 시적 성향이 생명과 연민인 것은 어린 시절에 타계한 누이의 죽음, 식민지 말기의 강제징집, 해방 이후의 소용돌이와 6.25동란의 체험들에 기인한다.

 

6. 25전쟁의 소용돌이가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하던 1956년 박용래는 <가을의 노래>, <황토길>, <> 등으로 현대문학의 추천을 완료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시의 형식면에서 볼 때 박용래의 시는 주로 시각적, 청각적 비유에 의지해 단조로운 톤을 활용하여 간명하고 섬세한 묘사를 즐겼다. 동양적 여백의 미를 추구하여 짧은 시행, 반복과 병렬구조, 전통적인 민요조 리듬, 명사나 명사형 어미 등을 주로 사용했다. 간결하면서도 응축적인 구어를 사용해 깊은 서정적 여운을 느끼게 하는 것이 박용래 시가 지닌 큰 특징 중 하나이다.

대표저서

연 번

종 류

작 품 명

발행처

발행년도

비 고

1

가을의 노래

현대문학6월호

1955.06.01

 

2

황토길

현대문학1월호

1956.01.01

 

3

현대문학4월호

1956.04.01

 

4

시집

싸락눈(저녁눈고등교과서 수록)

삼애사

1969.02

고등 문학

(2학년)7

5

담장

현대시학

1970.04

 

6

동인시집

청와집

한국문인협회

1971

 

7

구절초

주간조선

1975

 

8

2시집

강아지풀(월간문학1969.12.1)

(겨울밤 중등교과서 수록)

민음사

1975

중등 국어

2-2(6)

9

연재글

호박잎에 모이는 빗소리

문학사상

1978

 

10

3시집

백발의 꽃대궁

문학예술사

1979

충대문고

11

사후시선집

먼바다(한국문학1980.11)

창작과비평사

1984.11

충대문고

12

오류동의 동전

심상

1984.10

 

13

산문집

우리 물빛 사랑이 풀꽃으로 피어나면

문학세계사

1985.11.01

충대문고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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