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7년(태종 17년) ~ 1456년(세조 2년))
세종의 총애를 받은 집현전 학사 박팽년은 대전 회덕 출신으로, 본관은 순천이며 자는 인수(仁叟), 호는 취금헌(醉琴軒)이다. 그는 1434년(세종 16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성삼문 등과 함께 집현전 학사가 되어 수많은 편찬사업에 참가하였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충신으로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으려 할 때 목숨을 바친 사육신 중 한 명이다.
박팽년은 집현전 출신 학자들 중에서도 시를 비롯하여 경학, 문장, 필법 등 모든 면에서 탁월하여 세종과 문종의 깊은 총애를 받았을 뿐 아니라, ‘집대성’이라는 칭호를 받았다고 전해온다. 삼대가 화를 입어 오늘날 그에 대한 자세한 행장이나 문집(文集) 등이 전해지지 않지만 유복자인 아들과 여종의 여식을 바꿔 길러 사육신 중 유일하게 대를 잇게 되었다. <추강집>의 ‘사육신전’이나 쌍청당 현판을 비롯한 기록들이 남아 있다.
박팽년의 유허비는 대전 가양동에 있고, 그의 묘는 성삼문, 유응부, 이개의 묘와 함께 현재 노량진 사육신 공원묘지에 있다.